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산드로스 3세 (문단 편집) === 군사 능력 === [[인류]] 역사상 최고의 [[전쟁 영웅]]을 뽑을 때 제일 많이 거론되는 인물들 중 한 명이다. 자기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제우스]]의 아들, 즉 '''[[신]]'''이라고 믿었으며 전투에서 가장 사망률이 높은 최선두에 서서 눈에 띄는 황금 갑옷을 입고 싸울 정도로 겁이 없고 용맹했다. 20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을 때 어린 아이가 왕이 되었으니 혼란스러울 것이라 판단한 [[고대 그리스]] 국가 [[테베]]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테베 공방전|반란을 진압함은 물론 테베를 아예 멸망시켜버렸다.]] 마케도니아의 50,000명이 안 되는 군대를 이끌고 동원 가능 병력이 수십만에 이르는 광대한 페르시아 제국 전역을 7년 만에 정복했다. 기록으로 정확하게 전해지는 전투만 40여 번을 벌여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고, 심지어 이 전투들은 대부분 원정에 병력적 열세라는 불리한 상황에서 치룬 전투들이다.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보급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여기서 알렉산드로스를 결정적으로 차별화하는 부분은, '''이 모든 승리를 본인이 선두에 서서 얻었다는 것'''이다. 전술적 역량도 뛰어났지만 그 전술의 핵심이 본인의 무력을 이용한 선두 공격을 바탕으로 펼쳐졌기에 개인으로서의 전투력도 인류 정점급으로 꼽힌다. 누구나 그가 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반짝이는 황금 갑옷을 입고 전투가 끝날 때까지 적들을 쳐죽였다는데, 이것은 당연히 굉장히 위험한 수로 개인의 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왕의 허무한 전사와 부대의 와해로 이어지는 도박이었다. 당장 페르시아 측에서 본인들의 왕이 도주할 때마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감안하면 이는 명백하다.[* 본인이 신의 아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는 기록에 따라서 그는 이것을 도박이라고 인지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당연히 이것은 타고난 담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자신감이었다.] 흥미롭게도 뛰어난 무력을 지닌 지휘관으로 유명한 [[항우]]와 [[리처드 1세]]는 현대 기준으로도 거구[* 항우의 키는 정확하지 않지만 약 '''184cm''' 정도, 리처드는 '''196cm'''였다.]들이었고, 이 두 지휘관에겐 당대 왜소한 체격의 병사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근골격계와 긴 리치라는 조건이 있었지만, 알렉산드로스 3세는 당대 기준으로도 평범한 체격이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그의 무용과 생존은 더욱 놀랍게 다가온다. 왕 본인이 선두에 서서 적진의 중심부를 직접 공격한 기행에 가까운 무용을 반복한 것은 엄연히 역사적 [[사실]]이고, 특히 페르시아를 무너뜨린 가장 결정적인 전투였던 [[이소스 전투]]와 [[가우가멜라 전투]]에서도 열세인 전력 차를 본인을 선봉으로 한 중심부 돌파로 이겼다. 당연히 본인의 무력이 뛰어나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전사했을 것이고 페르시아 제국 정복이란 역사도 없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운이 따랐을지언정 수십 번의 최전방 전투를 치르면서 죽거나 불구가 되지 않은 것은 총기가 없던 냉병기 시대인 것을 감안해도 실로 경이로운 기록이다. 유튜브에 흔한 대규모 전투 시뮬레이션을 봐도 클로즈업된 시점에선 피아 식별도 힘든 흙먼지 속 아수라장에서 뒤엉킨 병력들과 비 오듯이 날아오는 화살 등으로 정신이 없는데, 현실은 더군다나 1인칭이고 눈에 띄는 갑주를 입은 왕을 향해 공격이 쏟아진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고도의 집중력과 극한의 체력소모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수십 번이나 꼭짓점에서 끊임없이 적을 베는 동시에 부대를 지휘하며 매번 승리를 이끌었다.[* 최선두에서 죽어가는 병사들도 고생이지만, 후방에서 지휘만 내리는 것도 고된 일이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투스]]는 부족한 군재는 물론이고 지휘 자체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전투는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아그리파]]에게 맡겼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이 단숨에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멀쩡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온 몸에는 크고 작은 흉터가 있었고, [[말리 원정]]에서는 흉갑에 화살을 맞아 죽을 뻔 했다. 당시 그리스 전역의 인구를 다 합쳐봐야 2~300만조차 넉넉한 추정치인 데 비해, 페르시아 제국의 인구는 최소한 1000만에서 평균적으로는 2~3000만, 그리고 오버하는 학자의 경우 무려 8000만까지 추정하는 단일 국가로서 당대 최대의 인구 대국이었다. 그만큼 그리스와 페르시아 두 세계 간에는 넘사벽의 국력 차가 존재했으며 이미 그리스가 과거 페르시아의 침략을 물리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방어전과 정복전은 난이도가 천지 차이다. [[유목민]]처럼 청소년 이상의 거의 모든 남성이 기병대가 되는 사례를 제외하고, [[정주#s-1]](定住) [[문명]] 간의 싸움에서 '''알렉산드로스만큼 큰 국력 차를 뒤집고, 그것도 방어전이 아니라 [[정복]]전에서 승리한 예는 [[세계사]]를 통틀어도 찾기 힘들다.'''[* 방어전이라면 몇몇 예시가 있긴 하다. 고구려만 봐도 체급차가 최소 10배는 차이나는 거대국가 수나라-당나라를 상대로 수십만을 궤멸시켜 버리며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몇 안되는 엄청나게 극적인 사례이다.(간혹 고구려를 반농반목 국가라 하는 경우가 있는데, 휘하에 거란과 말갈을 쫄따구로 부린 특성 때문에 그쪽과 교류와 접점이 많았을뿐 엄연히 '''농본정주문명'''이었다.) 그런데 알렉산더는 그걸 넘어서 아예 거꾸로 정복을 해버렸으니 후대의 수많은 왕과 장군들이 롤모델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